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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전드 열전 #1] '로맨티시스트', 디터 부어덴스키

칼럼

by 녹백 2021. 2. 19. 1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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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들은 과거의 선수를 평할 때, 그 선수가 들었던 트로피의 개수를 중요히 여기곤 합니다. 또한 많은 전설적인 선수들이, 자신이 뛰었던 팀의 전성기 속에서 함께 빛나며 여러 트로피를 거머쥐기도 했죠. 그런데 여기, 자신의 커리어 중 정말 오랜 시간을 한 팀에 바치며 좋은 순간보다 어려운 순간을 더 많이 함께했던 로맨티시스트가 있습니다. 그는 바로 베르더 브레멘의 역대 No. 1 골키퍼, 디터 "부데" 부어덴스키입니다.

 

 

디터 부어덴스키의 선수 시절 모습 (출처: DFB)


<프로필>

 

이름: 디터 부어덴스키 (Dieter Burdenski)

생년월일: 1950년 11월 26일

국적: 독일 (브레멘)

신체조건: 1.81m

포지션: 골키퍼

키커 랑리스테 기록: IK 8회

베르더 소속 리그 출전수: 479경기

베르더 소속 우승 기록:

 

분데스리가 x1

 

2. 분데스리가 북부 지구 x1

 

<선수 커리어>

 

1969~1971 샬케 04

1971~1972 아르미니아 빌레펠트

1972~1988 베르더 브레멘

1988 AIK

1990~1991 비테서

2002 베르더 브레멘 Ⅱ

 

<감독 커리어>

 

1997~2005 베르더 브레멘 (골키퍼 코치)

2017~2018 코로나 키엘체 (구단주)

2018~ 코로나 키엘체 (어드바이저)


1. 순탄치만은 않았던 시작

 

샬케 04 소속 당시의 디터 부어덴스키 (출처: NDR)

디터 부어덴스키는 제 2차 세계대전 이후 독일 축구 국가대표팀에서 첫 골을 득점했던 헤베르트 부어덴스키의 아들로, 그 득점이 터진 지 4일 후인 1950년 11월 26일에 독일 브레멘에서 태어났다. 아버지의 유전자를 물려받은 디터는 축구선수로서의 길을 선택했고, 유스팀에서부터 차근차근 커리어를 쌓기 시작했다. 1966년까지 STV 호르스트엠셔 유스팀에서 골키퍼로 활약하던 그는 샬케 04을 매료시켰고, 결국 샬케 유스팀과 계약을 맺게 되었다.

 

샬케 04의 유스팀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주던 부어덴스키는 19세가 되던 1970년, 나중에 자신이 이적하게 되었던 베르더 브레멘을 상대로 성인팀 데뷔전을 갖게 되는 영광을 누렸다. 첫 경기부터 그는 클린 시트를 기록하며 순조로운 스타트를 끊는 데 성공했다. 일주일 뒤에는 VfL 볼프스부르크와의 DFB-포칼 1라운드 경기를 치렀는데, 2점을 내주고 연장전 끝에 2대 2 동점으로 경기가 끝나며 11일 뒤 재경기가 펼쳐졌다. 디터는 재경기에서도 역시 기회를 다시금 부여받을 수 있었는데, 이번에도 연장전까지 치렀지만 1대 1 동점이 깨지지 않아 승부차기가 진행되었다. 그리고 승부차기에서 샬케가 승리하며 다음 라운드 진출의 기쁨을 누릴 수 있었다. 이 경기에서 진행되었던 승부차기는 독일에서 공식적으로 진행된 첫 승부차기였다고 한다.

 

그렇게 팀에서 순식간에 많은 기회를 받나 싶었지만, 주전 골키퍼였던 노르베르트 니그부르에게 철저히 밀리며 벤치 신세로 전락해버리고 말았다. 노르베르트 니그부르는 70/71시즌 당시 여름과 겨울에 각각 키커 랑리스테 IK-4, IK-5 등급을 받을 정도로 출중한 실력을 보유하고 있던 골키퍼였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당연한 상황이었다고 볼 수 있다. 부어덴스키는 후반기에 들어 아르미니아 빌레펠트, 카이저 슬라우테른과의 리그 경기에서 겨우 기회를 받았고 포칼 4강 경기에도 출전할 수 있었지만 쾰른에게 무려 3점을 내주며 탈락하고 말았다. 그는 이후 기회를 잡고자 아르미니아 빌레펠트로 이적을 하게 되는데, 이때 그의 커리어에 걸림돌이 될 일이 터지고 만다.

 

1971년 당시 키커스 오펜바흐의 회장이었던 호르스트 그레고리오 카날레스를 둘러싼 수많은 기자들 (출처: Alchetron)

그가 이적하게 된 빌레펠트와 몇 달 전만 해도 자신이 몸 담고 있던 샬케가 겨뤘던, 즉 자신이 풀타임을 소화해냈던 그 경기가 조작된 경기로 판명 나게 되며 징계를 받게 됐다. 그렇다. 이 경기는 1971년에 터졌던 충격적 사건인 '분데스리가 스캔들'(Bundesligaskandal)의 한 조각이었던 것이다. 분데스리가 스캔들은 키커스 오펜바흐의 강등을 막기 위해 경기를 조작하는 대가로 선수들이 뇌물을 요구했던 사건으로, 당시 오펜바흐의 회장이었던 호르스트 그레고리오 카날레스가 승부조작과 관련된 오디오 테이프를 독일 축구 연맹 임원들과 기자들에게 선물하며 폭로해 수면 위로 드러났다. 디터가 참가했던 빌레펠트와의 경기를 포함해 총 6경기가 조작된 것으로 밝혀졌고, 가담자들은 모두 결코 가볍지 않은 처벌들을 받았다.

 

디터 역시 샬케 소속으로 이러한 승부 조작에 일정 부분 가담했다고 판단되어 차후에 출전 금지 처분을 받았고, 2,300 마르크의 벌금형 또한 받았다.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그가 이적하게 된 아르미니아 빌레펠트는 70/71시즌에 잔류하게 되어 71/72시즌을 치를 수 있게 되었지만 그 시즌의 모든 승점은 0점으로 삭감되는 조치를 받으며 자동적으로 다음 시즌에 강등 확정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디터는 71/72시즌동안 거의 모든 경기를 소화하며 경험은 쌓았지만 미래가 불투명해지며 커리어에서의 위기를 일찌감치 맞이했다.


2. 터닝포인트

 

아르미니아 빌레펠트 소속으로 뛰고 있는 부어덴스키 (출처: NDR)

빌레펠트에서 1년간 뛰며 신인 치고는 그럭저럭 괜찮은 퍼포먼스를 보여준 디터 부어덴스키는 팀과 함께 강등의 길을 걷게 되기 전에 SV 베르더 브레멘의 관심을 받아 이적할 수 있었다. 팀과 함께 나락으로 떨어져 크게 성장하지 못할 뻔했던 디터에게 있어선 천금과도 같은 기회였다. 그러나 디터가 이적해 온 첫 시즌인 72/73 시즌엔 과거의 잘못이 여전히 발목을 잡았다. 승부조작에 일정 부분 가담했다는 이유에서 1973년 2월 4일부터 1973 년 5월 21일까지 출전 정지 처분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는 5월 15일에 사면되었지만 그에게 매우 큰 영향을 미친 건 여전히 사실이었다.

 

디터 부어덴스키가 있기 전, 베르더엔 귄터 베르나르트라는 레전드가 있었다. (출처: DeichStube)

더불어, 디터는 비골 골절상을 입으며 당시 베르더에서 황혼기를 보내고 있던 귄터 베르나르트에게 기회를 넘겨줄 수밖에 없었다. 분데스리가의 출범과 동시에 베르더 브레멘에 이적해 무려 10시즌 동안 팀의 수문장으로 활약한 베르나르트는 당시 분데스리가 최다 출전 기록을 보유하기도 했었을 정도로 오랜 기간 중용을 받은 선수였다. 이러한 상황에 놓이게 된 부어덴스키는 주전 골키퍼의 서브 키퍼로서 비운한 시즌을 시작했다.

 

그렇게 시즌이 끝나고 귄터 베르나르트가 스스로 벤치로 향하며 주전 골키퍼 자리를 물려받은 디터는 드디어 자신의 진가를 발휘할 기회를 부여받았다. 그는 73/74시즌, 곧바로 분데스리가의 전 경기에 모두 선발로 출전하며 자신의 시대가 열렸음을 알렸다. 그러나 그가 좋은 모습을 아무리 보여도 팀의 상황은 그리 좋지 못했다. 구단 차원에서 이적료 제한 폐지 이후 1971 무렵부터 클럽의 다른 지출을 줄여 스타플레이어들을 영입하기 위해 마구 이적료로 투입하며 구단의 재정이 불안해졌기 때문이다. 선수들의 케미스트리는 엉망이었고, 성적은 중하위권에 머무는 상황에 처했다. 디터는 이러한 팀의 상황 속에서 계속해서 거의 모든 경기를 출전하며 골문을 든든히 지키기 시작했다.

 

아버지이자 감독이었던 헤베르트 부어덴스키(왼쪽)와 아들이자 선수였던 디터 부어덴스키(오른쪽) (출처: NDR)

팀의 불안정한 상황 속에서 감독들 역시 성적 부진으로 줄줄이 잘려나가던 가운데, 75/76시즌엔 디터의 아버지인 헤베르트 부어덴스키가 베르더의 지휘봉을 잡게 되면서 부자지간이 팀의 중심을 이루게 되기도 했다. 헤베르트는 22라운드까지 7승 3무 12패를 기록하며 팀이 하위권으로 추락시켰고, 구단이 기대하는 성적에 미치지 못해 불행히도 시즌 도중 경질되고 말았다. 지휘봉은 이후에 베르더에서 왕조를 세운 오토 레하겔이 잠시 물려받았는데, 레하겔은 남은 시즌 경기만 마무리하고 떠났다.

 

76/77시즌까지 팀의 완전한 주전 골키퍼로서 좋은 모습을 보이며 리그를 대표하는 한 명의 선수로 거듭난 부어덴스키는 1977년 6월, 디 만샤프트에 소집되기에 이르고 6월 8일에 열린 우루과이와의 친선전에서 선발로 풀타임을 소화하며 국가대표팀 데뷔를 가졌다. 이 무렵부터 디터는 기량을 더 끌어올려 리그에서도 팀의 성적과는 별개로 뛰어난 실력을 자랑했다. 국가대표에서는 제프 마이어라는 벽에 막혀 우루과이 전 이후 도통 출전 기회를 잡지 못했음에도, 그의 훌륭한 실력을 높이 평가해 키커 랑리스테에서 77/78시즌 여름에 IK-4 등급을 부여하며 디터는 첫 IK 등급을 받을 수 있었다. 디터는 시즌 막바지에 스웨덴과의 평가전에서 다시금 기회를 받았으나, 3대 1로 경기에서 패배하며 아쉬운 결과를 남겼다.

 

디터 부어덴스키(왼쪽에서 세 번째)와 디 만샤프트 멤버들 (출처: NDR)

하지만 부어덴스키는 그의 훌륭한 실력을 인정받아 월드컵 멤버로 합류했고, 비록 출전하진 못했지만 국가의 대표 선수로 국제 대회에 나가는 경험을 비로소 해보게 되었다. 당시 제프 마이어의 위상은 정말로 높았기 때문에 이 정도로도 충분히 대단한 업적임은 분명하나, 아쉬움은 분명히 남았을 수밖에 없다. 디터는 이 월드컵을 포함해 국제 대회에 차출이 되더라도 출전을 단 한 번도 못해봤으니 더더욱 말이다. 오직 국가 간의 친선전, 유로 예선에서 밖에 출전 기회를 부여받지 못했던 것은 평생의 한으로 남았을 것이다.


3. 다시금 찾아온 위기, 그리고 디터가 보여준 의리

 

76/77 시즌의 디터 부어덴스키 (출처: Kelocks Autogramme)

부어덴스키가 계속해서 고군분투했으나 팀의 상황은 점점 심각해져만 갔다. 감독들이 줄줄이 경질되며 성적이 계속해서 하락했고, 재정적 문제까지 덮쳐 베르더의 순위는 최하위권으로 곤두박질쳤다. 그리고 결국엔 79/80시즌을 17위로 마무리지으며 강등이 확정되어버리지만, 디터는 팀을 버리지 않았다. 디터는 강등 확정 바로 직전 시즌에도 전, 후반기에 IK-3를 두 번 받았고, 강등이 확정된 시즌에도 전반기에 IK-2를 받을 정도로 엄청난 실력을 자랑하고 있었기 때문에 사실 그는 충분히 더 좋은 팀으로 떠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는 80/81시즌을 2. 분데스리가 북부리그에서 보내며 팀을 다시 제자리로 돌려놓기로 결심한다. 이 선택은 결코 쉽지 않았을 것이고, 팬들에게 더욱 큰 사랑을 받게 된 이유가 되었다.

 

쯔바이테 리가로 강등된 베르더 브레멘은 함부르크에서 성공을 거뒀던 명장 쿠노 클뢰처를 선임하며 다시금 재도약에 나섰다. 클뢰처는 조니 오튼과 토마스 샤프 같은 어린 선수들과 클라우스 피히텔, 에르빈 코스테데 같은 노장들을 잘 조화시켜 팀의 분위기를 살려냈고, 에르켄슈비크와의 32라운드까지 성공적으로 마무리했다. 그런데 클뢰처가 갑자기 심각한 교통사고를 당하게 되어 팀을 더 이상 이끌 수 없는 상황에 처하고 말았다. 전혀 예상치 못한 변수에 당황을 금할 수 없던 베르더는 또 한 번 잔여 경기들을 오토 레하겔에게 맡겼고, 다행히 그대로 1위를 유지하며 시즌을 마치게 된다. 부어덴스키는 2. 분데스리가 북부리그에서 출전한 35경기 중 무려 15번의 클린 시트를 기록하며 팀의 승격에 매우 크게 공헌했다. 그렇게 디터 부어덴스키는 바로 1부로 돌아오는 목표도 달성했고, 베르더 소속으로 첫 트로피를 들어보게 되었다. 물론 그 트로피가 2부 우승 트로피였으니 한 편으론 씁쓸하긴 했을 것이다.

 

오토 레하겔 감독(왼쪽)과 디터 부어덴스키(오른쪽) (출처: buten un binnen)

이번엔 75/76시즌과 달리 오토 레하겔 감독이 계속해서 감독직을 이어가기로 결정했다. 지금 와서 보면 레하겔의 감독 경력이 엄청나게 화려하기 때문에 대단해 보이지만, 사실 당시의 레하겔은 감독 경력은 꽤 있으나 남긴 성과는 없는 감독이라는 박한 평가를 받고 있었다. 도르트문트의 감독이던 시절엔 묀헨글라트바흐에게 12대 0이라는 수치스러운 기록을 남기며 '오토 토하겔' (Tor+Hagel, 골 폭풍이라는 뜻이다.)이라는 별명이 붙기도 했었다. 그런데 그 레하겔 하의 베르더가 심상치 않은 성적을 내기 시작했다. 승격 직후 시즌인 81/82시즌, 여전히 부어덴스키가 거의 모든 경기를 소화하는 가운데 브레멘은 리가에서 5위를 기록하며 엄청난 성장세를 보였다.

 

왼쪽부터 디터 부어덴스키, 볼프강 지드카, 브루노 페차이, 벤노 묄만, 프랑크 노이바르트이다. (출처: NDR)

그리고 82/83, 83/84시즌에 부어덴스키는 과거의 명성을 되찾는 데에 성공한다. 82/83시즌에 베르더가 깜짝 준우승을 해낼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가 바로 디터가 후방에서 골문을 든든히 지켰기 때문이었는데, 그는 본인이 펼친 퍼포먼스를 바탕으로 상반기와 하반기에 키커 랑리스테 IK-4, IK-3 등급을 받아냈다. 다음 시즌에도 역시 훌륭한 퍼포먼스로 팀이 5위로 시즌을 마치는 데 크게 공헌해 상반기엔 IK-2 등급까지 받아냈고, 후반기엔 IK-4 등급을 받으며 건재함을 보였다. 부어덴스키는 이 무렵 국대로 다시금 소집되어 친선전에 네 차례 출전하기도 했다.


4. 베르더와의 마지막 인사, 그리고 새로운 인사

 

'Mr. 브레멘' 토마스 샤프(왼쪽)과 디터 부어덴스키(오른쪽) (출처: buten un binnen)

하지만 그가 마지막 전성기를 맞이하고 있던 시기에도 팀은 우승과 거리가 멀었다. 오토 레하겔이 지휘봉을 잡은 이래로 분데스리가에서 여섯 시즌 간 5, 2, 5, 2, 2, 5위를 기록하며 계속해서 아쉬운 성적을 기록했고, 부어덴스키는 에이징 커브를 맞이하기 시작했다. 4년 간 무려 세 번이나 준우승에 그쳤으니 얼마나 답답하고 아쉬웠을지는 짐작이 간다. 그렇게 어느새 35세로 스쿼드에서 만프레드 부르크스뮐러를 이어 두 번째로 나이가 많은 선수가 된 디터는, 86/87시즌동안 마지막 불씨를 다 태우고 팀에 새로이 이적해 온 올리버 렉에게 자리를 물려줄 수밖에 없었다.

 

베르더에서 디터 부어덴스키가 마지막으로 보낸 87/88시즌, 팀은 끝끝내 마이스터 샬레를 쟁취해냈다. (출처: NDR)

하늘도 참 무심하다. 디터가 부동의 주전으로 거듭나고 난 후 그렇게 헌신하고 고생하던 때엔 우승과 인연이 없더니, 올리버 렉이 주전을 차지하자마자 우승을 해버렸다. 그래도 결국 베르더에서 마이스터 샬레를 들게 된 디터 부어덴스키는 다음 시즌 팀에게 작별 인사를 보내게 되었다. 베르더에서만 무려 16년을 보낸 레전드 한 명이 팀을 떠나는 순간이었다. 16년 간 그는 베르더 소속으로 리그에서만 479경기를 소화해냈다. 그의 다음 행선지는 스웨덴 리그의 AIK였고 부어덴스키는 단 한 경기만을 소화한 채 은퇴를 택했다. 그리곤 2년 뒤인 1990년, 갑자기 에레디비지의 비테서와 계약하며 커리어를 1년 더 이어갔고 다시금 은퇴를 택했다.

 

그리고 6년이 지난 1997년 6월, 디터 부어덴스키는 한스-위르겐 "딕시" 되르너 체제의 베르더 브레멘에서 골키퍼 코치로 지도자 경력을 시작했다. 그렇게 코칭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는데 되르너가 8경기만을 치르고 시즌 도중 팀을 떠나게 되었고, 자신과 선수생활을 함께 했던 볼프강 지드카가 지휘봉을 잡게 되며 둘이 재회하게 되었다. 지드카는 시즌을 7위로 잘 마무리하고 다음 시즌에도 이어서 팀을 이끌게 된다. 그러나 시즌 초반 성적이 곤두박질치고 지드카가 펠릭스 마가트 감독으로 대체되었으나, 마가트 역시 바닥에서 벗어나지 못하며 원클럽맨 토마스 샤프가 지휘봉을 잡게 되었다. 자신보다 10살이나 어린 신인 선수였던 토마스 샤프가 37세라는 젊은 나이로 지휘봉을 잡게 된 것이다. 아무튼 지드카에 이어 디터는 본인과 함께 선수 생활을 했던 경력이 있는 샤프와 함께 팀을 이끌게 되었다. 그 누구도 이것이 베르더의 제2의 전성기가 시작하는 순간이라고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베르더 Ⅱ팀에서 대타를 뛰게 된 디터 부어덴스키 (출처: NDR)

그런데 중간에 재밌는 상황이 발생했다. 2002년 2월, 레기오날리가 소속의 베르더 2군 골키퍼 선수들이 줄줄이 부상을 당하며 팀은 51세의 디터 부어덴스키에게 급히 도움을 요청했다. 그리고 디터는 그 요청을 수락하며 켐니처 FC를 상대로 경기에 출전했으나 팀은 아쉽게 3대 1로 패배하였다. 그리고 디터는 다시 골키퍼 코치 직책으로 돌아가 커리어를 이어 나갔다. 샤프와 함께 베르더의 코치로 활동하며 부어덴스키는 03/04시즌 팀이 더블을 이뤄낸 순간을 함께 즐길 수 있었고, 2005년 11월 31일부로 8년간의 골키퍼 코치 생활을 마쳤다. 그 후 폴란드 리그의 코로나 키엘체의 구단주가 되었다가, 현재는 팀의 어드바이저로 남아있다.

 

그러나 부어덴스키는 여전히 베르더에 대한 애정을 보이며 끊임없이 조언을 남기고, 칼럼을 작성하고 있다. 디터의 칼럼은 빌트에서 만나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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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윤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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