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항상 1위 만을 눈여겨봅니다. 아무리 꾸준히 상위권에 머물렀다고 한들 1위 한 번 못해봤다면 사람들의 뇌리에서 잊혀가기 십상이죠. 그리고 그것이 '팀'의 이야기라면 선수들 개개인 모두가 힘들어질 겁니다. 팀에서 혼자 돋보일 수 있는 실력을 갖고 있다면 1위를 차지할 수 있는 팀으로 떠나고 싶어 하게 되는 게 사람의 심리이기도 할 것이고요. 그런데 여기 리그의 탑급 실력을 갖고도 계속해서 한 팀에 헌신했던, 팀의 기둥과 같던 선수가 있습니다. 그 주인공은 바로 '정열의 골키퍼'라 불리었던 드라고미르 "드라간" 일리치입니다. 이번 칼럼은 시즌 별 기록이 남아있지 않아 1편보다 분량이 다소 짧다는 점 미리 양해를 구합니다.

<프로필>
이름: 드라고미르 일리치 (Dragomir Ilic)
생년월일: 1925년 8월 16일
사망일: 2004년 6월 18일
국적: 세르비아(유고슬라비아)
신체조건: 기록 없음
포지션: 골키퍼
키커 랑리스테 기록: 출범 이전, 외국인 평가 미포함 시기
베르더 소속 리그 출전수: 305경기
베르더 소속 우승 기록: X
<선수 커리어>
?~? BSK 베오그라드 (현 OFK 베오그라드)
1948~1948 베르더 브레멘
1949~1949 1. FC 자르브뤼켄
1949~1961 베르더 브레멘
1963~1964 베르더 브레멘
드라고미르 일리치는 1925년 8월 16일, 유고슬라비아의 베오그라드에서 태어났다. 그리고 일리치는 자신의 고향인 베오그라드를 연고로 하는 구단인 BSK 베오그라드, 현재의 OFK 베오그라드에 입단해 유소년 선수로 활약했다. 일리치가 14살이 되던 해, 유럽에선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여 대륙 전역이 혼돈에 빠졌다. 6년 간 전쟁이 이어졌기 때문에 일리치는 그 사이에 성장했고, 청년이 되어 세르비아의 군인으로 전쟁에 참전하게 되었다. 이때 이탈리아 군에 의해서 포로로 잡히는 위기에 처하는데, 다행히 무사히 전쟁이 끝났고 영국군의 병원 기차에 올라 독일로 향하게 되었다.

독일로 향한 일리치는 오스톨슈타인에 위치한 실향민 캠프에서 머물게 되었다. 그 무렵인 1948년, 베르더 브레멘의 골키퍼였던 칼하인츠 회거가 갑작스럽게 SC 파이너에 합류하기로 결정하며 팀을 떠나게 되었고 베르더는 급하게 회거의 대체자를 물색해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 회거는 1948년 12월 12일, 콩코르디아 함부르크와의 홈경기를 2대 2로 마친 것을 마지막으로 팀을 떠나버렸다. 그런데 마침 이 시기에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점프력, 캐치 안정성, 그리고 반응속도를 지녔다'는 한 골키퍼에 대한 소문이 베르더에게 흘러 들어갔고, 베르더는 그 골키퍼를 오스톨슈타인에서 찾고야 만다. 그렇다. 바로 그러한 찬사들은 모두 드라간 일리치에 대한 내용이었던 것이다.
베르더는 바로 그를 브레멘으로 데려오기 위해 즉각적으로 준비를 했고, 오스톨슈타인 캠프로부터 나올 수 있게 도왔다. (비록 여기저기를 왕복하는 수고를 하게 되지만 말이다.) 그는 마침내 그로센브로데(오스톨슈타인 내의 지역) 부근의 캠프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고 오베를리가 노르트의 베르더 브레멘으로 입단하게 된다.
일리치는 1948년에 베르더에 합류했고, 1949년 1월 16에 펼쳐진 브레머하펜 93과의 원정경기에서 2대1로 첫 승을 경험했다. 그런데 이 경기를 시작으로 반년 간 베르더에서 착실히 뛰던 일리치가 1948년 여름에 갑작스럽게 12000 마르크의 돈을 받고 프랑스 2부 리그의 1. FC 자르브뤼켄과 프로 계약을 맺어버리는, 베르더에겐 어이없는 상황이 벌어진다.

제2차 세계대전이 종료되고, 독일은 영국, 소련, 미국, 프랑스에 의해 나누어졌다. 프랑스는 독일의 남서부를 점령했는데 이때 잘란트 지역은 프랑스의 치하에 있었다. 자르브뤼켄은 잘란트 주의 주도였기 때문에 마찬가지로 프랑스의 점령을 당하고 있었다. 일리치가 이적하게 된 자르브뤼켄은 현재는 독일의 3. 리가에 속한 팀이지만, 당시엔 프랑스에 연고지 자체가 프랑스에게 점령당한 만큼 리그도 프랑스의 2부 리그로 편입되어 있었다.
그리고 일리치는 자르브뤼켄으로 향해 친선 경기들을 치르며 경기 감각을 끌어올리고 있었는데, 베르더는 이 계약이 효력이 없다는 근거를 마련해내 계약 무효를 선언해버린다. 그리고는 더 이상 그를 놓치지 않기 위해서 49/50시즌, 일리치와 정식적으로 계약을 맺어버리기에 이른다.

우여곡절을 겪으며 결국 베르더에 정착하게 된 드라고미르 일리치는 점점 팀에 완벽하게 적응해내기 시작했다. 그가 팀과 정식적인 계약을 처음으로 맺게 된 49/50시즌 각각 중원은 헤베르트 부어덴스키가, 전방은 쿠노 클뢰처가 맡고 있었다. 여담으로 둘은 모두 은퇴 후 감독이 되어 한 차례씩 베르더의 감독직을 잠시 맡고 떠난 바 있다. 헤베르트는 성적 부진으로 떠났고, 쿠노는 어처구니없게도 큰 교통사고를 당해 오토 레하겔에게 감독직을 내주고 떠났다. (참고: [레전드 열전 #1] '로맨티시스트', 디어 부어덴스키)
당시 오베를리가 노르트는 요제프 포지팔이라는 막강한 수비수를 보유한 함부르크 SV가 주름잡고 있었는데, 1954년과 1955년에 순서대로 우베 젤러와 디터 젤러 형제가 나란히 HSV로 이적하며 더더욱 막강한 전력을 보유하며 리가를 완전히 장악했다. 반면에 베르더는 상~중위권을 머물며 우승할 기미조차 없어 보이던 것이 현실이었다. 그런데 일리치가 합류하기 전 시즌인 47/48시즌 8위에 그쳤던 베르더는 그를 데려옴으로써 전력을 크게 강화시켜 4위까지 반등하는 데에 성공했다. 일리치를 데려오며 후방 자원을 든든하게 마련해놓은 베르더는 향후 팀의 전설적 수비수로 거듭나는 원클럽맨 아르놀트 쉬츠를 비롯해 공격수 빌리 슈뢰더 등을 데려오며 전력을 더욱 보강해 나갔고, 56/57시즌엔 디나모 자그레브로부터 일리치와 같은 유고슬라비아 태생인 젤리코 차이코프스키를 영입해오며 스쿼드의 사기를 높였다. 차이코프스키는 2년 간 일리치와 함께 팀에서 활약한 후 뉘른베르크로 떠났다.

팀의 성적은 중간중간 거듭해서 흔들리긴 했지만, 훌륭한 선수들을 하나 둘 팀에 데려오며 경쟁력을 높였고 58/59시즌엔 처음으로 준우승을 달성해내고야 만다. 이 모든 성과의 뒤엔 팀의 어려운 순간에도 꿋꿋이 골대를 지키며 꾸준한 활약을 펼친 일리치의 공이 숨어있었다. 그는 10년이라는 오랜 시간 동안 팀의 성적에 동요되지 않고 매우 꾸준하게, 그리고 묵묵하게 뛰어난 실력을 매 경기에서 보여주며 후방을 단단하게 잠갔다.

일리치는 베르더에 계속해서 헌신하며 매번 모두를 놀라게 하는 모습들을 보여줬고,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베르더-엘프(Werder-Elf, 베르더의 11명이라는 뜻으로 베르더 브레멘을 일컫는 말)에서 빼놓을 수 없는 기둥과 같은 존재'라는 찬사를 받았다. 또한 '정열의 골키퍼'라는 수식어가 일리치를 따라다녔다고 전해지는데, 그러한 수식어는 일리치가 골라인 부근에서 뛰어난 반사 신경으로 공을 걷어내는 모습과 페널티 에어리어 내에서 말 그대로 완벽하게 공을 컨트롤하는 능력을 보여줬기 때문에 붙게 된 것이었다. 베르더는 매우 어려웠던 경기들에서 이러한 일리치의 엄청난 골키핑 능력 덕분에 위기를 벗어나고 승리를 얻어낼 수 있었다고 한다.

일리치가 계속해서 훌륭한 퍼포먼스를 보여줬지만, 팀의 성적은 계속해서 한 끗 차이로 함부르크에게 미치지 못했고 60/61시즌까지 세 번 연속으로 준우승으로 시즌을 마쳤다. 그리고 어느덧 그의 나이도 34에 육박하게 되었고 베르더는 59/60시즌에 영입했던 하인리히 코카르티스와 세대교체를 진행하려는 계획 중에 있었다. 일리치는 더 많은 퍼포먼스를 보여줄 수 있는 기량을 유지하고 있었음에도, 하인리히에게 기회를 넘겨주려는 생각이었는지 60/61시즌을 끝으로 은퇴 선언을 하게 된다.
1949년부터 1961년까지, 무려 12년 동안 301경기를 소화하며 전설적인 활약을 선보이던 일리치는 유지하고 있던 기량에 비해 일찌감치 은퇴를 선언했다는 사실은, 팀뿐만 아니라 오베를리가 전체가 아쉬움을 감추지 못하게 했을 것이다. 다른 골키퍼들과 다르게 일리치는 '긴 시간 동안 팀에서 헌신했다'는 것에 그치지 않고, '긴 시간 동안 꾸준하게 놀라운 능력을 보여주며 헌신했다'는 표현이 더욱 어울리는 선수였기 때문이다. 오베를리가 노르트를 대표하는 선수 중 한 명이었다는 뜻이다. 실제로 드라간은 함께 베르더에서 활약했던 한스 하게나커와 역대 오베를리가 노르트 선수 순위에서 공동 3위를 차지했다. 함부르크의 시대를 빛냈던 수많은 선수들을 제치고 3위를 차지했다는 사실은 그가 얼마나 대단한 존재였는지를 보여주는 척도라고 보아도 무방하다. 세르비아 현지에서는 드라고미르 일리치는 크리보쿠츠, 아이로비치, 라덴코비치 등과 함께 당대 유고슬라비아 골키퍼 황금기의 주인공 중 하나로 평가하기도 한다.
그렇게 코카르티스가 일리치의 자리를 물려받으며 게오르그 뇌플 감독 체제 하의 베르더는 이전과 같이 리가에서 순항했다. 그뿐만 아니라 수비엔 헬무트 야기엘스키, 요제프 피옹테크 등을, 미드필드엔 막스 로렌츠(베르더의 역대 베스트 XI를 논할 때 2군 이상으로 들어갈 정도로 이후 훌륭한 모습을 보여줬다.)를 채워 넣으며 오베를리가 노르트를 넘어 전국적으로 경쟁력 있는 팀으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무엇이 문제였을까. 비운하게도 여전히 함부르크에게 밀려 분데스리가가 출범하기 전 마지막 시즌인 62/63시즌까지 두 번 연속 준우승에 그치는 쓴 맛을 경험한다. 베르더는 5년 연속으로 콩을 깐 것(?)이다.

그런데 잠시나마 뛰어난 모습을 보여줬던 코카르티스가 분데스리가 출범과 동시에 은퇴 선언을 하게 된다. 그는 올덴부르크와의 경기에서 머리를 크게 부딪히며 두개골 기저부에 골절상을 입었고, 부상으로부터 복귀하긴 했지만 그 후유증을 버티지 못해 일찌감치 커리어를 마쳤다. (하인리히 코카르티스는 2009년 뇌졸중으로 사망했는데, 선수 시절 입었던 두개골 기저부 골절상의 영향이 컸다는 분석도 있었다.) 베르더는 그를 대체하기 위해 귄터 베르나르트를 영입하는 신의 한 수를 둔다. 물론 시즌 초엔 귄터가 베르더로 오자마자 인대가 찢어져 반월판 수술을 받게 되어 서브 키퍼 클라우스 람베르츠가 그 자리를 대체했지만 말이다.

그렇게 일리치가 은퇴한 후로 3년 간 팀은 정상적으로 돌아가며 분데스리가에 잘 정착하는 듯 보였는데... 사상 초유의 사태가 베르더를 덮치고 만다. 귄터 베르나르트, 클라우스 람베르츠를 포함해 2군의 선수들까지, 총 6명의 골키퍼들이 모조리 부상을 당한 것이다. 일부러 그러라고 해도 만들기 어려울 상황일 듯하다...하지만 베르더에겐 일리치가 있었다. 위에서 언급했듯 은퇴할 무렵에도 일리치는 여전히 뛰어난 기량을 보유하고 있었고, 이를 인지하고 있던 베르더는 일리치에게 긴급하게 도움을 요청했다. 그렇게 37세의 사나이가 필드로 복귀하는, 그것도 팀의 모든 골키퍼들이 줄줄이 부상당했기 때문이라는 재미있는 상황이 발생한다.

일리치는 얼떨결에 분데스리가 데뷔전을 치르게 된다. 첫 경기는 1. FC 쾰른과의 매치였는데, 무려 4 실점을 허용하며 팀은 4대 3 패배를 당하게 되었다. 데뷔전으로서는 좋지 않은 결과임이 분명했지만, 이것이 순전히 일리치의 실수로 인한 결과는 아니었기에 베르더는 그를 더 믿었다. 그리고 프로이센 뮌스터, 1860 뮌헨, 1. FC 뉘른베르크를 상대로 내리 승리하며 그는 잠시나마 생긴 공백을 철저히 메꿔 끝까지 빌리 물타웁 감독의 베르더를 구원해냈다.
1963년 12월 7일에 펼쳐진 두 번째 경기인 프로이센 뮌스터와의 경기에서 일리치가 보여준 모습은 특히나 인상적이었다고 한다. 63/64시즌의 분데스리가 기록에는 '키퍼 일리치는 뮌스터의 파워풀한 공격을 계속해서 막아냈고 연속된 슛을 골라인 끝자락에서 선방해냈다'라고 남아있고, 분데스리가 골키퍼들에 대한 사전에는 '그 골키퍼는 수없이 많을 정도로 현명한 선방들을 계속해서 보여주며 베르더의 3대 1 승리를 지켜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고 한다. 글자로만 봐도 그의 플레이가 어땠는지 눈에 선할 정도이다.
그렇게 분데스리가에서 네 경기를 마친 일리치는 시즌이 끝나고 다시금 정식적으로 은퇴를 선언하며 팀을 떠나게 되었다. 베르더는 분데스리가 첫 시즌에서 아쉽게도 10위에 그쳤고, 쾰른이 초대 우승을 차지했다. 그리고 물타웁 체제의 베르더는 다음 시즌 초각성하여 두 번째 우승을 차지하는 쾌거를 이룬다. 일리치도 부어덴스키와 마찬가지로 우승과는 참 인연이 없던 선수였다.

드라간은 선수 생활을 끝마친 후, 브레멘 지역에서 전문적인 담배 도매상으로 직업을 전환해 오랫동안 일했다고 한다. 그리고 2004년 6월 18일, 일리치는 고향으로 돌아가지 않고 브레멘에서 눈을 감는다. 사실상 우연히 왔던 브레멘에서 평생을 바쳤고, 마지막 순간도 브레멘에서 맞이한 일리치. 그는 베르더 브레멘이라는 구단의 틀을 넘어, 브레멘에서 평생 기억될 사나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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